Green day in 제주 - 여행의 시작, 제주 4.3 평화공원, 산굼부리, 비자림 서커스매직유랑단

성치않은 발목상태에, 아니 그것보다 더 성치 못한 마음상태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떠나온 제주.
기대보다 더 행복했고, 기대보다 더 공허했고, 기대보다 더 따스했고, 기대보다 더 아름다웠죠.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았어요.
나의 소중한 또 하나의 가족 소낭식구들과, 스쳐간 인연들. 삼박사일을 꼬박 달려준 베스-비
그리고 한껏 더 여행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 당신에게 고맙다 하고 싶네요.



am 3:36 잠을깨지 못하는 핸드폰


아 기다리고 아기다리 고아기 다리고 아기다리던 제주여행 출발 전야.

징하게 아프고 아리고 가을바람이 들었던 지난 일주일을 탁한 술잔에 털어 넘긴 밤.
잠과 술에 취해 새벽녘 뒤척이다가 몇시쯤 됐을까 더듬더듬 핸드폰을 봅니다.

얼레? 이게 왜이래? 번뜩 잠에서 깬 나는 더듬더듬 더듬뱅이 버벅뱅이가 되어버린 아이폰을 붙잡고 공황에 빠지죠
이리 만져보고 저리 만져보고 아 얘 왜이러니 검색도 해본끝에 초기화 시키고는 힘들게 원상복귀 시켜요

송초딩 제주침공. 왠지 시작부터 느낌이 좋지 않네요.


침공 아닌 침몰

괜시리 스펙타클했던 새벽과는 달리 일찌감치 일어나 평화롭게 짐가방을 챙겨요.
빠진 물건 없을까 체크체크체크. 오케이. 시간도 남았겠다 아침까지 먹는 여유도 부립니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해요 날씨 참 끝내줍니다. 파아란 하늘. 당신과 공유하지 못한 하늘일지라도 말이죠. 
공항에 도착할 무렵 뇌리속을 번개같이 빠진 물건이 떠오릅니다. '신분증'
아오 카드지갑만 챙겼지 신분증은 하나도 챙기지 않았더군요. 비행기는 물론, 스쿠터 대여때도 신분증이 필요할텐데.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요상한 노래가 입에 맴돕니다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해녀대합실....'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등본을 떼면 대신 신분확인이 된다기에 달려갔지만,
왠걸 지문이 다르다는 겁니다. 한번두번세번네번다섯번... 난 누구죠.

모든 방법에 실패한 저는 어찌어찌 공항보안과의 신분조회를 마치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게 됩니다.
제주침공. 시작도 못하고 김포침몰로 바뀔뻔 했네요.

본격적인 침공의 시작

지난 제주여행에서도 참 잘해주셨지만 이번에도 너무 잘 챙겨주신 사장님 덕에 무난히 스쿠터 대여를 완료해요
125cc 베스비는 비명처럼 들리는 엔진소리를 내면서 달려나가죠. 만족스럽네요 충분히.

한적한 도로위에 올라 목적지를 찾습니다. 가까운 곳에 제주4.3평화공원이 있네요. 
또 전공병 돋네요. 안들리고 지나칠 수 가 없지요. 갑시다. 

귓가엔 green day의 basket case가 울려퍼집니다 


섬의 한 - 제주 4.3평화공원


한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평화공원.
따사로운 가을햇살, 청명한 가을하늘, 흐르는 구름 아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어요.
곳곳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여기저기 총총거리며 망중한을 즐기는 그네들에 왠지 더욱 쓸쓸함이 느껴졌구요.
이별장면에서 하필 또 비가 내리는 느낌이랄까요. 시작부터 여엉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생명보다 중요할 수 없겠지요.
해방정국을 거치고 이념으로 서로에게 총칼을 겨눈 비극적인 역사를 거쳐오면서 우리는 날카로워져있었어요.
서로에게 주홍글씨를 새기고 희생양을 만듬으로써 자신을 정당화 시켜갑니다.
자치와 평화를 꿈꿨던 아름다운 섬은 피와 이념으로 붉게 붉게 물들죠.
그리고 육지에 대한 원초적 배타성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섬의 한이 뿌리 깊게 내리는 것이지요

4.3평화기념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리돼있어요.
중심을 관통하는 사건부터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까지, 외국인이 오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전시관이죠.
무늬만 그럴듯한 지방의 수많은 역사관 기념관을 보다가 제대로 된 기념관을 볼 수 있어서 참 뿌듯했답니다 
+)마지막에 노통령님 영상은 정말 울컥하게 만들었네요

 
억새가 한라산을 가리려 춤을추다 - 산굼부리


기분 전환을 좀 해볼까 산간도로를 타고 속도를 내던 중, 산굼부리 앞에 다다르게 됩니다.
에라이 내리는 곳이 목적지지 뭐. 하는 마음에 일단 스쿠터를 세우고 무작정 올라가기 시작해요.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은 산굼부리 중턱에 자리잡은 억새를 살랑살랑 흔들어요.
그리고 저 멀리 한라산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구요. 
제법 많은 사람-주로 가족과 커플-들 사이에 비록 나는 혼자이어도, 마음을 담은 사진이 답을 하지 않아도,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행복할 수 있었-끊임없는 세뇌의 결과일지라도-어요.

귓가엔 boys likes girls의 great escape가 울려퍼집니다 


비밀의 화원 - 비자림

비자림은 나에게 있어 왠지 비밀의 화원과도 같은 느낌이에요.

처음 찾았을때가 이른 일곱시경, 해가 어스름하게 뜨기 시작한 무렵이었죠.
은은한 남청색의 공기와 안개가 맴돌아 있는 그 곳은 풀벌레 소리마저 조용한 신비함을 간직한 곳이었죠.

오후에 찾아간 비자림에는 찾아온 사람들이 꽤나 많았어요.
왁자지껄 뛰어노는 아이와 노인의 손을 이끈 가족들. 서로의 팔에 팔을 건채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나만의 신비로운 숲은 가족공원이 되어 아쉬움을 남깁니다. 

사람들을 피해 구석구석 찾아들어가자 마침내 흙밟는 소리와 풀벌레 목청소리가 어우러지기 시작해요.
귓가에 울리던 viva soul의 music picnic을 잠시 꺼두고 그네들의 소리에 마음을 열어봐요.

여러번 이곳을 찾으며 생겨난 기억들이 하나하나 중첩되고 정리되어 갈 무렵.
아직 잎이 파아란 단풍나무를 보며 빌어요. '빨리 울긋불긋 잎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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